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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 & Between the Reports

[8뉴스]트위터 청문회도 뜨겁다-20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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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리]트위터+청문회/트위터 청문회도 후끈!
프로그램 : 8시뉴스

[앵커멘트]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트위터에서도
요즘은 청문회가 화젭니다.

청문위원들을 통해
후보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트위터로 적극적인
자기 방어에 나선 후보자도 있습니다

임찬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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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즘 트위터에서는 청문회 관련 단어가
트위터 인기 단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문회가
TV로 생중계 되는 시간에는
후보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후보자들의 답답한 답변이 이어지거나
의원들의 한심한 질문에는 비난의 글이 쇄도합니다

공직 후보자들에게
대신 물어봐달라며 청문위원에게
질문을 전달하는 글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
직접 후보자들에게 묻기도 합니다.

{ 천정배 / 민주당 의원 }
“제 트위터에 올라온 질문 가운데..
기자 시절 많은 비판 기사를 쓴 걸로
아는데 만약 지금 기자였다면 신후보자에대해
어떤 기사?

{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직접 자기 방어를 하는 후보자도 있습니다

[CG]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온 몸으로 부딪혔던 내 삶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증언하겠다”며
청문회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스탠딩] { 임 찬 종 }
“국회 청문회장에는
청문위원들과 후보자만 들어갈 수 있지만
이렇게 트위터를 통해
누구나 청문회에
참여할 수 있는 셈입니다.

SBS 임찬종입니다”

{ 영상취재: 이승환 편집: 채철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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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트위터가 끼면 기사가 된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으니 관심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소통은 ‘홈페이지’나 ‘인터넷 게시판’, ‘사이월드’ ‘블로그’…
심지어 PC통신에서도 가능한 수준이다…

트위터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지만, 트렌드성 기사는 이런 식으로도 쓸수 가 있다.

…보도국에 트위터 열심히 하는 기자가 몇 없어
‘트위터 특파원’이라고 된 양…트위터 관련 기사가 발제될 때마다 총을 맞는다.

이 날도 내근이었는데..궁시렁..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29th, 2010 at 10: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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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도시철도공사 특혜 의혹 고발-201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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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리]도철/ 특혜 의혹 고발
프로그램 : 8시뉴스

[앵커멘트]
시민단체가 전동차 제작 등 각종 입찰 사업과 관련된
도시 철도 공사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시민단체는
도시철도 공사 관계자들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임찬종 기자의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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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참여연대가 제기한
도시철도공사의 비리 의혹은 크게 세가집니다

먼저 도시철도공사가
서울시 조례를 고쳐
전동차를 직접 만들겠다고 나선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참여연대는
도시 철도 공사가
전동차 제작에 뛰어들면서
전동차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업체를
장비 생산 업체로 선정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 김형식 / 서울시의원 }
[인터뷰]김형식 서울시의원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상위법에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조롑니다”

지하철 쇼핑몰 개발 사업자 선정에도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도시철도공사는
향후 10년 동안 1조 4천억원이 넘는
보장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써낸
업체를 선정 한 뒤
협상 과정에서 보장 수익을
1/3로 대폭 깎아줬단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 광고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선정된 업체가 납부해야할 계약 보증금
140억원을 받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참여연대는 이에따라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
[싱크]참여연대
“시민의 교통수단인 서울 도시철도
공사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비리 의혹들이
검찰 수사로 철정히 밝혀져야.”

이에 대해 도시철도공사는
이미 서울시 감사를 받았지만
특혜 의혹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습니다.

SBS 임찬종입니다

{ 영상취재: 박진호, 신동환 편집: 오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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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고발을 하기 전에 이미 여러 사정기관과 언론사가 비슷한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참여연대, 이번에도 안진걸이었다.

매일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고, 시위를 조직하고, 기자들을 상대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남자.
안진걸씨가 없이도 이른바 ‘진보적 시민운동’이 제 몫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29th, 2010 at 10:51 pm

[8뉴스]백두산 관광 5명 사상 –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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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리]백두산+버스/백두산 관광 5명 사상(OK)
프로그램 : 8시뉴스

[앵커멘트]
백두산 관광에 나섰던 한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사고가 나
1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관광객들은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러 떠난
시각 장애인과 이들의 후원자들이었습니다

임찬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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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어제 오후 5시 40분쯤

중국 지린성 쑹장허에서
빗길을 달리던 버스 1대가 뒤집혔습니다

[CG in]
버스에는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고구려 유적 답사를 위해
퉁화시로 향하던
한국인 관광객 21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CG out]

{ 관광객 인솔자/
“중앙선을 위반하고 (앞 쪽에서) 달려드는 승용차
를 피하기 위해서 왔다 갔다 했나 봐요. 빗길에
미끄러져가지고 (전봇대를 들이받았습니다.)” }

이 사고로
한국인 57살 남성 고모씨가 숨지고
58살 여성 김모씨 등 4명이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관광객들은
충북 청주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온
시각 장애인 13명과 이들을 도와온 후원자 12명,
그리고 직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토요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백두산 관광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넒은 세상을 느끼게 해주자는 취지로
숨진 고씨 등 후원자들이 경비를 제공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 김준식 / 장애인시설 직원
“고구려 문화 유적을 돌아보면서 백두산 기행을
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외부와
잘 접촉을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고씨의 가족 3명은
오늘 오후 긴급히 여권과 비자를 발급 받아
중국 현지로 떠났습니다.

SBS 임찬종입니다

{ 영상취재: 이천기(CJB) 편집: 김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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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을 보러 가겠다는 시각 장애인들이 백두산 관광에 가서 버스 사고를 당했다.
숨진 사람은 후원자 1명이었다. 장애인들은 무사했다.

명복을 빈다.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29th, 2010 at 10:4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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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뉴스]이포보 농성 31일..찬반 집회 – 201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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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리]이포보+집회/ 농성 31일..찬반 집회(ok)
프로그램 : 8시뉴스

[앵커멘트]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경기도 여주의 이포보 건설 현장에서
환경단체 간부 3명이 31일째 농성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어제 퇴거 명령을 내렸지만
농성은 계속되고 있고, 이포보를 중심으로 찬반 집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임찬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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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다다다)
남한강이 지나가는 경기도 여주군 이포리 일대

강 한 가운데 솟은 27미터 높이의 보 위에서
환경단체 회원 3명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탠딩] { 임 찬 종 }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환경운동연합 간부 3명은 오늘로
31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법원이 어제 공사방해는 불법이라며
퇴거 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할 경우
공사 업체에 하루 1인당 3백만원씩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들은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며 농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염형철 /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4대강 사업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합리적으로 논
의할 수 있는 토론기구와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습
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주장을 계속 해 볼 생각입
니다. }

그러나 환경단체 회원들의 농성으로
공사 중단이 장기화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환경단체의 공사 방해로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 공사 현장 근처에서 열린
이포보 건설 찬성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4대강 사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거듭 요구했습니다.

[인터뷰]
{ 엄복현 / 여주군 주민 }
“여주주민은 8,90% 반대하는데 환경단체들이
저렇게 반대하는 거는 잘못된 거죠”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회원들도 오늘 같은 곳에서
집회를 열어 충돌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두 집회는 별다른 충돌없이 마무리됐습니다.

에스비에스 임찬종입니다.

{ 영상취재: 조창현 편집: 김호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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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보의 위와 아래.

위에는 ‘내 일’도 아닌데 목숨을 거는 이들이 있고,
아래에는 ‘내 일’을 방해받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여주군민은 단양 쑥부쟁이보다 여주 경제 살리기를 원한다”는
당당한 플래카드에 아연했던 여름날.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29th, 2010 at 10:41 pm

[8리]삼성가 3세 이재찬 숨진 채 발견 – 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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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리]이재찬+투신/ 숨진채 발견(OK)
프로그램 : 8시뉴스

[앵커멘트]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손자인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찬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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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오늘 아침 7시 반쯤,

서울 이촌동의 아파트 입구 계단에서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남성은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손자인 이재찬
새한미디어 전 사장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이씨가 복도 창문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 아파트 주민 A씨/
“무엇인가 탁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타어어가 터
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남편이) 나가더니 되
돌아와서 사람이 떨어져서 죽었다고..” }

[스탠딩] { 임 찬 종 }
“이씨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이
이씨가 재벌가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주민 싱크]
{ 아파트 주민 B씨
“식구랑 안 살고 남자 혼자 (살아). 한 40살 정도
되고..여기 콧수염 기르고..” }

이재찬씨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차남으로
비운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그룹 회장의 차남입니다.

이창희씨가 창업한 새한미디어 그룹이
지난 200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재찬씨는 경영에서 손을 뗐고
우울증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씨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지만 5년전부터
가족과 떨어져 이촌동 아파트에서
월세로 생활해 왔다고 경찰이 밝혔습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의
삼성병원에 마련될 예정입니다

SBS 임찬종입니다.

{ 영상취재: 신동환 편집:남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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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고 싶은 말]

또 한 번의 卒記다. 사건 기자를 하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기록하는 일을 부지기수다.
이번 사건도 남 다른 감상은 없었다.

이재찬이 불과 10여년 전 만 해도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주름잡는 황태자였다는 것도..
그가 연예인, PD, 감독, 기업인들과 가졌던 무수히 많았을 화려한 술자리도..
재기를 다짐하며 그가 겪었을 그 많은 좌절과 불면의 밤도..
국내 최대 재벌을 수성하고 있는 삼촌과 이재찬 사이의 냉혹한 혈연관계도…
두 아들과 재벌가 출신 부인이 영안실조차 찾지 않은 사연도..

그 많은 궁금증과 사연을 나는 무덤덤하게 모른 척하고, 쓰고, 읽고, 편집한 뒤 여느 날 처럼 퇴근했다.

며칠 뒤 이 기사를 블로그에 올리기 직전 우연히 읽은 김연수의 문장들이 가슴에 남는다.

이 사람의 졸기는 간단하다. ‘연지시살지 시년이십육 然至是殺之 時年二十六’ 실록은 왕이 (그 정직함을 미워해) 결국 그를 죽이니 그 나이는 26세 때였다고 간단하게 전한다. 실록이 전하지 않는, 그 열 글자 속에 숨은 스물 여섯 살의 회한과 아쉬움과 슬픔을 헤아리는 것은 모두 다 내 몫이다. 카드 결제일과 원고마감일 같은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이런 것 까지 마음 속에 짊어 지고 살아야 하니 여간 고달픈 인생이 아니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부디 훗날에 눈 밝고 가슴 시린 사람 있어, 이재찬씨의 죽음도 기억해 주길..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29th, 2010 at 10:36 pm

[8리]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제 –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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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리]김대중+추모제/ 서거 1주기 추모제(OK)

[앵커멘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과 고향 전남 하의도에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은 한 송이 꽃을 바치며
1년 전 우리 곁을 떠나간 현대사의 거인을 추억했습니다

임찬종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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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광장에서는 추모 전야제가 열렸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고,
추모시가 낭송될 때 서울 광장엔 숙연함이 감돌았습니다

[싱크] 황지우 / 시인 19:30 예정
{ 황지우 / 시인 }
“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

시민들은 오늘 낮 설치된 분향소에
한 송이 꽃을 바치고 쪽지를 남기며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 한 고인을 추억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의 뜻을 함께 했던 외국 인사들도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 조모아 / 버마 민족민주동맹
“우리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전세계 다니면
서 많이 요구한 분이라서 (왔습니다.)” }

고인의 생가가 있는 전남 하의도와
정치적 고향인 광주에서도 분향소가 설치되고
고인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내일 오전 10시에는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여야 대표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SBS 임찬종입니다.

{ 영상취재: 서진호, 이승환, 김남효(KBC) 편집: 정성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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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고 싶은 말]

휴가 마치고 복귀한 뒤 첫 리포트. 굳이 그럴 필요 없는 데도 낮 12시부터 땡볕을 맞으며 조문객을 지켜봤다.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세상을 뜨면서
급박하게 터져나오던 야권의 오열과 분노가 새삼 떠올랐다. 오후 늦게 문화제가 열릴 때 쯤 야권 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추도시가 뉴스 시간에 임박해 발표돼, 미리 기사를 써넣고 적당한 내용을 촬영해서 회사로 보냈다.
(0000 은 아무 거나 찍어서 보낼 테니 채워넣으라는 뜻이다). 황지우 시인의 추도시는 조금 감정 절제에 실패한 문장처럼 들렸다.

행사 자체는 계획대로 치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스타일 그대로였다.
휴가 기간 열심히 읽었던 [김대중 자서전]을 반추해봤다.
그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극단적이었지만, ‘현대사의 거인’이었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사실 그는 잠시 은퇴할 때, 그리고 서거한 뒤에 더 ‘거인’으로 평가받았다.

이제는, 김대중 같은 거인은 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 정도 크기의 영웅이 필요 없을 정도만큼은 발전했으니까..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29th, 2010 at 10: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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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이포보의 위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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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볕에 에어컨이 있는 차 안도 쾌적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땀이 흘렀다. 2010년 8월 21일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이포보 건설 현장은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지상에서 27미터 올라간 이포보 위에서 농성 중인 환경운동 활동가 3명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통화도 하루에 딱 15분만 가능하단다.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활동가의 전화기와 카메라 기자의 망원 렌즈를 통해 나는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접촉할 수 있었다.

“왜 올라가신 건가요?”

“우리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론기구와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까지 받아들여지는 바가 없기 때문에 저희는 이곳에서 우리의 주장을 계속 좀 해볼 생각입니다.”

이 더위에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서 31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치고는, 염형철 사무처장의 목소리는 쾌활하고 차분했다. 오히려 밑에서 기다리는 환경운동연합의 다른 회원들의 표정이 더 어두웠다.

4대강 반대가 ‘자기 일’도 아닌데…게다가 법원에서 퇴거 명령까지 받았는데…사업 추진의 옳고 그름을 떠나, 목숨을 걸고 4대강을 반대하는 이들의 자세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경이롭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 이포보 주위에는 인근 주민이 모여들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머리에 얹은 파란색 선캡이 인상적이었다. 군복을 입은 분들도 눈에 띄었다. 여주군이 나눠 준 보도자료에는 ‘인간 띠 잇기’와 ‘만세 삼창’을 계획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일사불란한 집회는 아니었다.

경찰은 순찰차를 타고 주민 사이를 가로지르며 “군민 여러분, 파사 성 주차장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집회 안내 방송을 맡았다.  도로를 활보하는 군민들의 ‘방송차’에선 “1천 5백 년 만에 여주 발전의 기회”라는 구호도 들려왔다.

이포대교 위에서 만난 엄복현 할아버지는 “여주군민은 80-90%가 찬성을 했는데 일개 환경 단체가 저러는 거는 국기 문란행위에요. 우리나라 법이 너무 물러요.”라며 개탄을 금치 못했다.

“여주 군민은 단양쑥부쟁이보다 여주 경제살리기를 원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선 이포보 건설이 ‘자기 일’인 사람들이 간절하게 4대강 사업 추진을 바라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은 경이롭지 않았지만, 너무나 쉽게 이해가 됐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목숨을 거는 사람들. 자기 일을 방해받는 데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 두 집단이 대치 속에 남한강 하류의 작은 마을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이포리는 긴장이 감돌고 있다. ‘자기 일’은 아니지만 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명분과, ‘단양쑥부쟁이’의 생명보다는 내가 사는 터전의 발전과 개발을 바라는 욕망이 맞서고 있다.

‘자기 일’도 아니고, 목숨을 걸만한 명분도 없는 기자는 그저 두 집단의 대치를 기계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할 뿐이었다. 설사 어딘가 높은 곳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극적인 대타협에 성공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농성한 활동가들과 ‘자기 일’을 훼방 당한 이곳 주민 사이에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날 양쪽은 모두 집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경찰은 집회 인원만큼 많은 경찰력을 배치하며 잔뜩 긴장했다. 다행히 두 집회는 1시간의 시차를 두고, 왕복 2차선 도로 건너에서 충돌 없이 개최되고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포보 짓는 건설업체의 움직임은 여전히 바빴고, 보 위에 남겨진 3명도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25th, 2010 at 1:4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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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과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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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경찰서를 출입 할 때 주로 인근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보통 혼자 아침을 먹곤 해서, 샌드위치를 주문한 뒤 기다리는 시간에 가게에 비치된 책을 한 권씩 꺼내서 읽곤 했다. 주로 만화책을 읽었는데, 책장마다 때가 꼬질꼬질 밴 만화책을 읽다보면 문득 샌드위치를 들고 먹을 손이 지저분해지는 느낌으 들어 다른 책을 고를 때도 있었다. 그 가운데 처세술 책도 한 권 있었다. 일본인 유학생이 유대인 부호를 만나 인생의 비밀스런 지혜를 배운다는 내용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야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는데 눈을 잡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자유인과 노예의 구분이었다.

유대인 부호가 일본인 유학생에게 물었다. 로펌 변호사나 고위 관료 같은 돈과 명예가 주어지는 ‘월급쟁이’를 하고 싶냐고. 유학생은 그렇다고 답했다. 부호는 생각이 짧다고 타박한다. 겉으로 보기엔 돈이 많아 보여도 ‘월급쟁이’들은 결국 ‘노예’라는 것이다. ‘자유인’으로 살고 싶으면 사업을 하든가 예술가나 프로 운동 선수가 되라고 권한다. 이들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보수를 거둬가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면서 자유인이다..운운..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자유인’이 진정한 프로페셔널인 건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일정에 맞춰 때로는 ‘뻗치고’ 때로는 밤을 새는 나로서는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다. 나의 페이스대로 나 자신을 계발하는 데 온전히 집중하고, 그 능력과 매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직종을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하루키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집필에 열중한 뒤, 쓸 데 없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마라톤을 하고 독서에 힘을 쏟는다며 ‘시크’하게 말하고..’한국판 하루키’인 김영하가 “20대에 친구들과 덜 어울리고 나에게 집중했으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텐데..”라고 ‘쿨’하게 한 마디 할 때, 솔직히 정말 부러웠다. 나도 생각해보면 말년 병장 때 혼자 운동하고 책 읽고 공부하며 내면적으로 뭔가를 축적해나갈 때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다만 그걸 ‘창작’이란 결과물로 내놓아 냉정하게 평가받는 ‘프로페셔널’이 되기엔 대담함이 모자랐던 듯.

그러나 이 길도 걷다보면 언젠가 내 이름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희망해본다. 사건과 인물들을 매일 매일 최전선에 지켜보는 직업이니, 잘 쌓아두면 나도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그 날이 왔을 때, 이번에는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13th, 2010 at 2:3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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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과 정치자금: 강준만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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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가 내내 해방 직후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들여다 봤다.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와 [김대중 자서전]을 함께 읽은 뒤, 해방 직후의 상황이 더 궁금해져 이영훈 교수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와 한홍구 교수의 [지금 이순간의 역사]를 더 읽었다. 본격적인 연구서적은 더 많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 손을 대기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듯. 그리고 지금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 산책-1940년대편 1,2]를 읽고 있다.

강준만 교수 책은 늘 ‘저널리스트적’인 긴장과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다. 1차 자료를 새로 발굴하거나, 남들과 다른 이론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식인’의 감각에서 중요하게 느끼지만 식자들은 지나쳐 버리는 논점을 발굴해 제시하는 데는 강준만 교수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해방 직후의 정치공간을 해석하면서도 강준만 교수는 ‘돈’의 문제에 주목한다. 과문한 처지라 다른 연구자들이 이 주제를 간과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요한 논점(특히 정치적 논점)으로 자리잡은 문제라고 보이진 않는다. 여러 논자들이 나름의 ‘역사관’에 입각해서 좌우합작이 실패하고 이승만과  친일 테크노라트 계층이 승리한 이유에 대해 여러 논리를 펼치지만, ‘돈’ 있는 쪽에 ‘힘’도 있다는 현실정치 법칙이 이승만이 승리한 중요 원인이었던 것은 틀림 없다. 강준만의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정치자금과 관련된 흥미로운 설명을 인용해 보겠다.

한민당은 이승만이 경제력을 가진 친척이 전혀 없다는 점에 유의하여 그에게 숙소로 돈암장을 제공했는데, 이 돈암장은 돈암동에 있는 대동고무상사 장진섭의 집으로 그는 한국 민주당의 재무부 부원이었다. 그는 이승만에게 매우러 15만원 씩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한국민주당의 총재로 취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승만은 15만원으로는 모자라 나중엔 친일 거부인 태창방직의 백낙승으로부터 직접 매달 50만원씩 받았으며, 당시 대표적인 친일 사업가였던 박흥식으로부터 2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기도 앴다.(45년 12월 가격으로 쌀 한 가마니에 750원) 이에 대해 하지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은 한국에 돌아온 후 얼마 안 있어 일부 재산 많은 부유층의 영향을 받는 몸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일제 밑에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이 그들의 기부금을 받는 대가로 장차 민족주의 정권이나 공산정권이 들어설 경우, 일제에 협력했다는 죄로 재산을 잃게 될지도 모를 그런 계층의 사람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유한 계층의 집단인 한민당과 그들의 산하에 있던 경찰까지도 자기 수하에 두게 되었다. 이승만이 한 일은 1927년 장개석이 상해의 은행가 집안과 정략결혼한 것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이 당시의 다른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정치자금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 누구건 지도자급 되는 정치인치고 정치자금 없이 정치를 한 사람은 없었다. 정치지도자는 우선 자신을 지지하는 ‘식객’을 위해서도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얼마 후엔 청년 조직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고, 그밖에도 돈이 들어가야 할 곳은 많았다. 바로 이 정치자금 문제가 해방정국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의 노선과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 편 1권], 인물과 사상, 2004, pp. 109-110

박헌영(좌파), 여운형(중도좌파,단독정부 반대), 김규식-김구(임정, 단독정부 반대), 이승만(우파,단독정부)로 대표되는 해방공간의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이승만이 친일 기업가들 덕에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모았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이승만은 미 군정이 적극 등용한 친일 테크노크라트들의 지지도 받고 있었다. ‘돈’과 ‘국가기구의 권력’(이 시기엔 주로 경찰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이승만이 경쟁에서 졌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다만 이승만도 지지세력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었을 것이고, 결국 강준만의 말처럼 ‘정치자금 문제가’ 노선과 행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강준만의 탁월한 통찰이 빛난다.

다음은 김구와 임정 세력의 정치자금에 대한 설명이다. 이승만과 비교해보면 조금 서글퍼진다.

이처럼 친일파 처단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김구와 임정은 친일 자본가와 한민당의 접근은 받아들였다. [조선일보] 사주인 방응모는 김구가 이끄는 한국독립당의 재정부장을 맡았다. 김구 역시 “해방 뒤의 현실정치에서 정치자금 문제 때문에라도 일정하게 친일파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그간 임정의 정치자금은 해외 한인들의 성금과 중국정부의 지원으로 조달되었다. 장개석은 김구의 귀국시 미화 20만 달러(현 가치 최소 300억원)의 거금을 주었다. 이와 관련 김영신은 “중국은 수십년 간 임정에 행사해왔던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김구를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키우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구는 미군정의 방해로 이 돈을 국내에 들여오지 못했다. 얼마 후 이 돈의 반입을 포기한 김구가 임정 시절 이승만과 재미교포 사회에서 받은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이승만에게 이 돈을 주기로 약속하자, 이승만은 중국 정부로부터 이 돈을 받아내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비록 이승만은 그 돈을 손에 넣진 못했지만, 이는 당시에도 그만큼 정치자금이 중요했단 걸 의미하는 것이다. – 강준만 . 같은 책, pp. 128-129

김대중은 “자서전”에서 김구가 남한 단독 총선에 참가했다면,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집권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친일파의 득세와 잇따른 학살은 막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김구가 장개석의 20만 달러만 가져올 수 있었다면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20만달러면 김구가 한민당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나름의 우익 청년 단체도 기를 수 있었을 텐데…그러나 이후 이어진 임시정부 출신들의 정치적 무능을 살펴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준만 선생 덕에 해방공간을 ‘현실정치’ 논리로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열린 것 같다. 그런데 현실 정치의 눈으로 보면 이승만의 집권은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결국 ‘돈’과 ‘국가기구의 권력’, 여기에 외부 변수인 ‘미국의 영향력’까지 등에 엎은 정치 세력과 맞서려면 압도적인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밖에 없었을 텐데… 그런 지지를 받았던 정치 지도자들은 모조리 암살되거나, 월북하거나, 아예 선거에 참여를 안 해버렸으니..이승만의 집권은 필연이었다.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13th, 2010 at 2:05 am

한홍구 교수의 민주화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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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한국 현대사 연구를 개척한 1세대이고, 과거사위원회에도 참여했던 인물인만큼 ‘비화’나 ‘가십’ 풀어놓는 솜씨도 만만치 않다. 말도 잘한다. 한겨레에 요즘 연재하는 ‘쾌도난담’ 2탄 같은 연재물(제목은 생각이 안난다)도 꽤 인기인 모양이다. ‘놈현 관장사’ 논란도 그 연재물에서 시작됐지 아마….

여하튼 한홍구 교수의 저작은 늘 재밌게 읽고 있지만,  한국 현대사, 특히 민주주의 투쟁사를 풀어나갈 때 ‘내 친구’ 내지 ‘내 아는 사람인데..’하며 이야기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사실 한홍구 교수의 역사적 관점 자체가 해방직후, 또 5.16쿠데타와 강남 개발로 혜택을 받고 집권을 해온 ‘특정 집단’이 있고(이른바 ‘친일파 세력’, ‘산업화 세력’), 또 이에 반대하면서 명맥을 이어온 ‘특정 집단’이 있으며(구야권), 광주항쟁의 정신을근거로 새롭게 탄생한 ‘특정집단’이 있다(이른바 ’386′ 이제는 ’486세대’)는 식이다. 한홍구 교수가 보기에 이 특정집단은 단순히 사회과학적 개념으로 구획되는 개념적인 집단이 아니라,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힌  ’실체가 있는 집단’이다. 특정 집단의  헤게모니 장악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사고하기 때문에 한홍구 교수는 김영상 정부를 평하며 이렇게 말한다.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되니까 많이 헷갈렸어요. 지금도 좀 헷갈리는 문제요죠. 문민정부 시절에 민주화가 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립니다…그런 측면에서 김영삼 정권은 전두환, 노태우에 비하면 엄청 민주화되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화의 기준에 따르면 또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한홍구, [지금 이 순간의 역사 -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겨레출판, 2010, p. 178

반면 김대중의 집권은 “태조 이성계 이후 최초의 정권 교체”라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왜냐? 이때는 한 교수가 인정할 수 있는 민주화 집단이 집권했으니까…

이런 사고 방식은 문제가 있다. 민주화의 기준은 민주주의적 제도의 정비와 실질적 집행 그리고 사회 경제적인 권리의 실질적 증진 여부이지, 얼마나 민주화 투쟁을 열심히 한 집단이 집권했느냐가 아니다. 심하게 말해, ‘나쁜 집단’(이 기준도 자의적이긴 하다만..)이 집권하더라도 실질적 민주화가 진전됐으면 ‘좋은 집단’이 집권한 뒤에 민주화가 후퇴한 것보다 나은 것이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가 김대중 정부 보다 더 나은 ‘민주’ 정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해도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점,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같은 치적을 볼 때 ‘민주화’의 측면에서 더 못한 정부라고 평하기도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장집 교수가 2007년 대선 직전에 한 말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민주주의다.’라는 말도 결국 ‘어떤 집단’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를 사적 연관관계를 지닌 특정 집단의 전유물으로 여기는 한홍구 교수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뒤늦게 운동권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 운동권 내에 선후배끼리는 서로 ‘형’으로 통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제 주변을 둘러봐도 저희 세대쯤 되는 사람들이 한 번도 노무현 대톨영르 형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중략)…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르고 몇 명이 시청 앞에 앉아 새벽까지 술을 마셨어요. 술을 마시고 좀 취한 상태에서 “야,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한 번도 형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 않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 또래가 노 대통령과 한 살 차이인 김근태 전 의원을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르니까 충분히 그럴만한 나이인데.. 그게 늦게 만나서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어요. 그래서 그날 빈소에 가 친구하고 술 한 잔 따르면서 “무현이 성”하고 바친 일이 있습니다 – 한홍구, [지금 이 순간의 역사 -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겨레출판, 2010, p. 261

노무현이 ‘좋은’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하면 추모하고 그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면 그만이지, 굳이 ‘형-동생’ 관계에 편입할 필요는 없다. 물론 한 교수가 이 부분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학벌주의’였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형-동생’에 노무현을 껴주지 않았던 죄책감을 토로하는 것은 거꾸로 ‘민주화’를 어떤 집단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내가 속한 세대(이제는 30대가 되버린 90년대 말 학번)가 이른바 ’486′들을 의심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민주화’를 집단의 소유물로 여기는 이 어이없는 자의식 과잉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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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한홍구 교수도 ‘광주항쟁 세대’ 이후의 세대들이 이른바 ’486′들에게 가지는 분노를 인식하고는 있는 모양이다. 비정규직인 KTX 승무원 노조에 대한 그의 인상적 경험.

(KTX 승무원 노조가) 박종철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아무리 민주화를 외치면 뭐할겠습니까? 더구나 철도공사 사장으로서 KTX 승무원들을 ‘자르신’ 분이 누구냐?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의 주역이던 이철 아닙니까? 신자유주의 시대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민주화라는 것이 운동권들한테만 민주화이고, 그들끼리만 좋은 자리 차지하고, 민주화라는 훈장 달고 나타나 자기들 목을 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중략)…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는데 민주화운동 진영은 이런 문제들을 얼마만큼 해결한 능력과 관심을 갖고 있을까요? – 한홍구, [지금 이 순간의 역사 -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겨레출판, 2010, p. 68

그러나 그의 해결책은 여전히 ‘민주화 진영’이 새로운 문제 의식을 어떻게 다뤄야하는가에 모여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역사적인 ‘정통성’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른바 ‘민주화 진영’이든 ‘수구 친일파 세력’이든 현재 당면한 문제를 유능하게 풀어가는 진영이 한홍구 교수 표현대로 “지금 이 순간의 역사”에서 정통성을 갖는 법이다. ‘민주화 진영’이 집권했든 안 했든 이런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진영론’이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법이다. ‘민주화 경력’으로 내편 네편을 가르다 보니, 이른바 원칙 없는 ‘범야권’ 연대가 이뤄지고, 이명박 정부 반대가 ‘민주냐 반민주냐’는 낡은 구호로 집약되는 것이다. 인맥 따라 뭉치는 게 인지상정이라 해도, 그걸 역사나 정치적 논쟁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자세는 위험하다.

Written by manuscriptor

August 11th, 2010 at 6:53 pm